생명의 사람, 나의 전우 정명석 병장 – 정원도

jms 정명석 목사 총재 월남 베트남 전쟁 참전

생명의 사람, 나의 전우 정명석 병장 – 정원도 글

jms 정명석 목사 총재 월남 베트남 전쟁 참전

* 정명석 총재 우측에서 첫번째

 

정명석 총재를 처음 만난 것은 1966년 베트남전에서였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생명의 절실함으로 가득한 전쟁터… 오직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하루 하루를 버텼던 그곳에서 정 총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소대본부에서 무전병을 맡고 있었는데 총재는 자원하여 2차 파월로 전쟁터에 온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틈만 나면 주머니 속 성경책을 읽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는데 정총재도 나도 항상 성경을 비닐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나는 어디선가 전쟁터에서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다 총알이 성경에 박혀서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연유로 성경을 읽지 않더라도 가지고 다니면 죽을 위기에서 살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항상 성경을 챙겼다. 정총재도 늘 성경을 가지고 다녔는데 나와는 달랐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틈만 나면 주머니 속의 성경책을 꺼내 읽었다.

jms 정명석 목사 총재 월남 베트남 전쟁 참전 성경

 

힘들고 궂은 일은 나서서

월남에서 만난 정총재는 선하고 우직한 성품으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2차 파월 됐을 때 소대 본부에서 전령을 구한 적이 있다. 전령이란 소대장의 식사를 챙겨주고, 양말도 빨아주며, 옷도 빨아서 다려주는 그야말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부분 신병들이 이 일을 맡는다.
그러나 소대장이 월남 경험이 많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여 총재에게 전령 역할을 요청했다. 그 당시에 정 총재는 고참 병장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정총재는 흔쾌히 “네,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총재는 소대장 짐까지 남들보다 두 배는 무겁게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다. 물통도 다른 사람은 4통을 갖고 다니면 12통을 갖고 다녔다. 신참도 아닌 고참 병장이. 자기의 할 일도 너무나 충실히 했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갈 정도일 것이다.

당시에도 정총재는 글을 잘 썼고 글쓰기를 무척 좋아했다. 나에게 써준 글 중에서 아직도 외우고 있는 문구가 있다. 두 개의 화살표를 그린 그림으로 “출발을 잘하라. 출발할 때는 각기 표가 잘 안 난다. 그러나 갈수록 성공과 실패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처음에 방향을 잘 잡아야 성공한다”라는 잠언 같은 글이었다.

‘물을 나눠주는 사람​’

정총재와 월남 생활을 가장 오래한 박정배라는 전우가 했던 이야기가 있다. 전쟁터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물이다. 주위에 물이 많다가도 한 번씩 작전을 나가 며칠 동안 산에서 지내게 되면 물이 바닥이 나게 된다. 태양은 뜨겁고 짊어진 짐은 많고 땀은 계속 흘러내리고 목은 바짝 마른다. 그럴 때는 정말 물이 생명줄과 같다. 작전하다가 물이 없어 다른 전우에게 달라고 하면 “내 피를 달라고 해라”할 정도로 잘 안 준다. 그런데 정 총재는 ‘물을 나눠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누가 달라고 하면 선뜻 물을 나눠 주었고 심지어는 전쟁터에서 기도를 해도 자기 기도뿐만 아니라 적군을 위한 기도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jms 정명석 목사 총재 월남 베트남 전쟁 참전 성경 전우

​생명에 대한 진실된 사랑

한번은 내가 왜 적들을 위해 기도하느냐고 물으니 “적들도 우리처럼 집의 부모 형제들이 애타게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부름 받은 국가가 서로 다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도 정 총재의 생명에 대한 심성은 진실 되고 남달랐다.
전쟁터에서는 적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라지만 정 총재는 포로 한명 죽인 적이 없다. 오히려 자기에게 총을 겨눈 적을 끌어안기까지 했다. 그렇게 끌어안은 적을 소대로 데려와서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소대장이 차고 때리며 크레모아를 터뜨려 버렸다.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는데도 결국 포로를 죽인 것을 알고 정 총재는 안타까워하며 사흘이 넘도록 울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생명의 사람

나는 왜 정 총재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월남전에 참전을 하게 됐는지를 안다. 정총재가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1차 귀국한 뒤에 부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 그리고 정 총재가 2차로 다시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귀국할 때까지 6개월 동안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훗날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정 총재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그런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jms 정명석 목사 총재 제자들과 함께

내가 처음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을 때 놀란 것은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밝다는 것이었다. 정총재는 제자들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20여 만 명이 넘는 제자를 둔 지도자가 자기 집 한 채 없고 땅 한 평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이 곳 저 곳에서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제자를 먹이고 입히는 것을 보았다.

삶을 목격하며​

보수파 장로교회 장로를 맡고 있던 나는 정 총재의 가르침을 듣고는 더 이상 전에 다니던 교회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내 나이에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재보기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정 총재의 삶을 목격하면서 이 길을 가기로 마음을 접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 총재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친구일지라도 그를 스승으로 여기며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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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 옆집에 살았던 남세용 집사 인터뷰

정명석 총재 인터뷰 동영상 남세용집사님

 

나는 총재님 옆집에 살던 남세용 집사입니다.
나에게는 형님 같고 나한테 너무 잘해줬고 지금도 보고 싶고 지금도 생각이 나요.
어디 있으면 내가 한번 찾아가면 만나보고 싶어요
요즘 나이 먹으니까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총재님은 같이 컸지요.
나보다 총재님이 3살 더 드셨어요.
지금 그 동네에서 같이 큰 거에요.

그때 제일 재미있었어요. 총재님하고 우리 고향에서 같이 할 때가
뭐든지 교회가 금산군에서 우리 교회가 날렸어요.

같이 굴에 가서 기도를.. 우리는 그때만 해도 소리 질러가지고 목에서 피가 나면 그게 은혜 받는 것인 줄 알았어요.
누구 소리가 큰 것인지 막 소리를 지른거에요.
플래시.. 광산하는 깐드레 불 갖고서 굴속을 가서 여기저기서 있는거에요.
여기는 총재님 있고 나는 거기 옆에 있고. 또 딴 전도사님 있고.
그러면 소리 지르면 웅웅웅 소리가 나지요..

총재님 성경을 보니까.
맨 성경을 보니까
성경을 펴면 울긋불긋해.
성경을 보고 빨간 줄을 쳐 놓은 것이…

내가 내 고향 석막리에서 주일학교 때 거기 바위가 다른 세계로 됐지만
정총재하고 나하고 거기 석막 교회를 인도를 했어요. 교회에서 설교를 했어요.
내가 나오고 나서는 정총재가 하고 했다고 하더라고..
정총재가 인도하고..

그 지금 교회 가는 길이 우리 천국같이 해놨지만 그 동네가 그 살던 거기가 바위가 많아서 새벽예배를 가려고 하면은 가서 일반 사람은 새벽예배 가려면 한 시간도 더 걸리고 하는 곳인데 한 십분 이십분이면 석막리를 내려갔어요. 훌훌 날라서..

여선생들이 있었어요. 내 동생하고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떤 종교에 대해서) 다 안 좋은 소리만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거기도 총재님은 뭐라고..

총재님은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종교를 그림으로 표현하더라고요.
기독교는 전기불로 비교를 하고 이런 잡 종교는 호롱불로 해서 다 하나님.
결국에는 하나님을 찾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 인간들이 잘 모르고
어떤 사람은 호롱불 같이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있고
기독교는 전기불로 비유를 해요.
그때 당시에 나한테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그때는 우리도 이해가 잘 안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이 양반은 뭔가가 좀 생각이 우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람이었구나..

그래도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총재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 다르면 이단이다.

총재님의 깊은 뜻을 몰랐는데
지금은 아.. 그때 그 그림으로 그려준 것을 이해할 수 있겠고..
그때 당시에는 호롱불이고 전기불이고..
이런 것을 그리면 그리는가 보다 그렇게 별로로 생각했어요.

총재님들은 보리밥만 먹었어요. 지금 형제들은 많고.

정총재는 찬밥이라는 얘기가.. 알아주지도 않고
이렇게 어디 전도하고 나가고 나갔다 들어갔다 하면은 동생도…
뭐 오빠 같이 따뜻한 분 없었는데
그림 같은 것 그려서 우리한테 설명하면
“저 미친놈 또 설명만 한다”는 식으로 집에서 별로 대우를 못 받았어요

월남 갔다 와서도 십일조 저기 해서 교회에 봉사를 많이 했고
총재님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가족에서도 사랑을 못 받았어요.
아버지 성격이 불같은 양반이에요. 그냥 저기 하면 그 성질을 감당을 못 해요.

질문 : 예전에 집에서 찬밥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대들고 그러셨어요?

대들고 그런 것은 나는 못 들었어요.
그런 양반도 못 됐어요.
서운한 소리를 들어도 그냥 그냥 본인은 괜찮다는 식으로 그랬지
나 같어도 월남 갔다 와서 돈 벌어다가
집에 텔레비전도 없었거든.
거기서 텔레비전도 많이 갖고 와서
외제로 보고 돈도 월남을 두 번씩이나 갔다 왔으니까
경제적으로도 돈을 많이 번거에요. 그때 당시..
한번 갔다 온 사람도 돈 벌었는데..
두 번씩 갔다 왔으니까..
교회도 십일조가 컸어요.
거기 돈 번 것 십일조 했으니까.. 헌금.

왜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다니냐고?
그게 친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야 네가 뭐를 안다고 그래?” 이런 얘기 한번을 안했다고.

부모 형제까지도 인정을 안 해 줄 때 그걸 생각해봐요.
그걸 누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어.

이 양반은 욕을 해도
너 왜 나한테 욕을 하냐? 그게 아니었어.
그러니까 이 양반의 깊은 마음을 우리가 깨닫지 못 한거야

미쳤다고 소문까지 났었어요. 정총재가 미쳤다.
같은 교인이면서도 정총재를 다 좋게 안 봤어요. 교회 내에서도..

그러니까 그게 성경적이에요.
이게 예수님이 성경에도 나오잖아.
고향에서 환영을 못 받는다는 성경말씀이 있잖아요.
정총재를 내가 봐도 확실해요.
가족에서도 핍박을 받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정총재님의 부모님들도 어느 정도까지도 이렇게 성공할 줄로 안 여겼다니까.
정총재는 있으나 마나 하는 자식이었어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했어요.

정총재가 서울에 가서 큰 일을 행하고 이렇게 성공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옛날 정총재가 아니거든..

정총재가 그렇다고 나를 내가 누군데.. 이런 교만 ..
한편으로 보면 서운한 부분이 있잖아.
그런데도 그 양반은 그런 내색 한번 안했어.
가족에 대해서도..

그 동네 사람들이 잘 알아요.
부모한테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냐. 이런 원망 한번이 없었어요.
생각해봐요. 사람이 감정의 동물인데..
내 형제들도 내 마음을 몰라주면 성질날 일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런 것을 서운하다!
이럴 수 있냐? 이런 원망 한번 안하고
따지는 것도 못 봤고.
지금 생각하니까 이 양반이 큰 그릇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으로는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대단한거에요.

미쳤다고 하는 것은 그 뜻을 모르니까 미쳤다고 하는거에요.

핍박이 그렇게 심하더니
각 기관에서니 뭐니 다 나중에는 총재를 못 도와주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어버렸어.

총재님이 인정을 못 받은 것은
그 때 당시 그 총재님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족도 어머니, 동생 누구고 총재님 편에서 이해를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총재님의 그 깊이를 모르니까
우리도 그냥 인간적인 부분으로만 생각하고 못 깨달은 거죠.

총재님은 그 전부터 누구고 병든 사람 있으면 기도해서 다 낫게 해준다고 했어요.
한의원인가? 자기 아버지가 한의사인데도 자기 딸을 못 낫게 하는거에요.
그런데 총재님이 낫게 해준다고 그런 적이 있어요.
그것의 결과는 내가 자세한 것은 몰라요.
금산읍 사람이거든.

예수님처럼 누가 인정도 안 해주고
그 총재님도 고향에서 가족까지도 인정을 안 하고 늦게서나 알아보게 됐고.
고향 석막리에서도 정명석이라고 하면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남 병든 사람 있으면 치료나 해준다고 하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 아니고
남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런 죽을 사람을 살려서 저기 하니까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생겨서 이렇게 큰 단체가 된걸로 나는 생각하는거에요.

총재님은 무슨..
지금 생각하면 농사를 잘 지어서 잘 사는..
이런 개인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거였어요.
우리는 농사를 지어야 생활하는 거였지만
말하자면 시골에서는 농사짓고 하는 사람들은
농번기가 되고 하면 농사짓는 것만 신경쓰잖아.
그러면은 총재님은 전도하는 그런 쪽에 관심을 쓰니까.
부모님은 싫어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부모님들도 총재님을 좀 이렇게 핍박한 것 같고..

총재님의 관심은 그런 쪽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장성해서도
우리는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그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그랬는데.

총재님은 그냥 상황이 되면 바람처럼 금산이고 농사철에도 가고 그랬어요.

왜 갔어요?

전도 같은 것 때문에 간 것 같아요.
그런 일은 가족이나 저기들은 싫어하잖아.
집에서 일을 해야지.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 하고..
농사 같은 먹고 사는 것 하고는 관계가 없었다는 거여.

가족도 “이놈의 새끼 이거 농사철이면 농사를 지어야지”
다른 데에 기도하러가고 전도하러가고 이렇게 하면
“너는 뭐여?”

들에 새를 봐라 농사도 안 짓고 해도
하나님이 다 먹여 살리고..
총재님이 이런 비유를 하더라고

우리는 그때 별로 그런 부분들이 느낌이 안왔어요.
그랬는데 총재님은 이렇게 먹고사는 것에 매이는 것이 아니었어.

어디 금산에 가면
총재님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고 해서 전도하고.
이렇게 하니까 우리는 모르는데 총재님 나름대로 체험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고 생활을 한 것 같아요

질문 혹시 거지나 어려운 사람들 집에 와서 머리 깎아주고 씻겨주고 밥 먹여주고 한적 있었어요???

정총재는 지금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예를 들어서 총재 가족들은 정신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누구를 데라고 왔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어.
미친놈. 나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인데.
왜 남을 신경쓰냐..
그러니까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서 가족들이 총재님을 핍박 한거여.
왜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본체만체 하면 되는 거지 왜 데리고 오는거여..
뭔 사랑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인지.. 자기는 데리고 왔는데..
가족들은 그 깊은 뜻을 모른거에요.
가족들도 모르고 나도 총재의 그 때 당시의 그 뜻을 모른거여.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우리와는 다른 것인데
전부 인간적인 생각으로 총재의 깊은 뜻을 모른거야.

그때는 우리도 농사 지을 때에요.
불광동 거기를 가보니까 그 때 하여튼 한 500명이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자주 안만나고 내가 총재님을 한 몇 년 만에 만난거에요 그때..
불광동에서 만난게.
만났는데..
남집사 내가 사람 통해 소식을 들었다. 남집사 좀 어렵다는 이야기를..
사기 당하고 조금 마음이 좋아서 사람을 너무 믿는게 있어요 내가..
그래서 남집사가 조금 어렵다는 이야기를 고향 사람들을 통해서 총재님이 들었다고 하면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데
내가 내 평생 야 진짜 무슨 가식도 아니고 진심어린 기도를…
“고향에서 목회 한다고 신학도 하고 했는데 하나님 이 남집사 앞길을 (부탁한다고)” 기도를 해 주시는거에요.

내가 그때만 해도 나도 조금 젊었었지
말이 인간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너무 빠르고
그냥 불로 그냥…
이야~~ 나도 부흥회도 참석해보고 그랬는데
부흥회를 참석하면은 “성령을 받아라”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그냥 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이 쏟아지는 것 같아..
그 때 상황을 표현하기가…..
참 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역사가 나타나는가보구나..

그 무언의 힘에 딸려가는 것을 느꼈어요.
불광동에 있을 때..

나도 넋이 달아났었죠.

총재님이 이런 것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으면 벌써 나왔을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인정을 안 하니까 못 나오는 거라고 그래요.
내가 지나고 보니까 그 전에는 우리도 잘 몰랐지.
그러니까 부모님한테도 대접도 못 받고 그랬는데
남들이 이렇게 성공했다고 했을 때도 형들도 늦게서야 인정했지 일찍부터 환영 안했어요.
모함했어요. 오히려 미쳤다고 하고..
너 이단이라고.. 너 때문에 나까지 지장이 있다 하고.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서야 총재님하고 이야기를 했대요.

이 양반이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이거 아니다 맞다 이런 설명을 안 하고
그런 것을 참 묵묵히 참고..
지금 생각하니까 그런거에요

이 사람이 정명석이를 정부에서도 두려워한다는 거여.
이 사람이 대단한 저기니까..
제자들이 전부 그렇게 하니까 겁난거에요.
개인적으로 대단하니까..

아니… 총재님이 여자에 환장한 사람이에요?
결혼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고..

쉽게 이야기해서 총재님을 그런 것으로 모함을 해서
덮어 씌워야 할 수 있지
그렇게 안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여.

그러니까 지금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거에요.
누가 총재님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하나님 밖에 더 알겠어?

나는 그게 모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그렇게 믿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더 좋은 하나님의 영광이 안 나타나는 것이니까..

어떤 뜻이 있길래 이런 상황이 됐나..
나도 참 뭐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지만..
내가 느꼈던 정총재의 옛날…
나도 여기 시내 나와서 총재님하고 헤어져 있어서 다는 몰라도..
그때 그 상황으로 볼 때는
총재님은 인간적인 것보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 편에서 서서 느끼는 사람으로 나는 느껴져요.

물론 하나님의 종한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너무 영광 나타내지는 못할망정 남의 티는 보면서 지 눈의 들보를 못 보는거에요.. 목사들이..

어떤 사람은 나를 위해 눈물 어린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목사들 돈도 빌려주고 도와줬는데 나를 세상에..
내가 서른 한 살 때까지 결혼을 못했어..
그 목사가 “쫌생이고 그 사람하고 결혼하면 안 된다고 ”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단사가 이야기를 해주는거에요.

그 사람이 오면 대전 극장 구경시켜주고 거기 와서 데이트를 좀 하자고
그렇게 꼬시더래..
그래서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제단사가 나한테 전화를 했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까
고향 선배로서도 그렇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종이냐 그런 이야기야.

정총재는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
진짜 하나님한테.. “하나님 이 남집사 옛날 그 신앙, 그 신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거에요.
내가 어떤 마음이 들겠어요?
내가 감동이 오겠어요 안오겠어요?

잘못됐으면 하나님이 심판할 것이고..
나는 총재를 진심으로..
인간이 베풀 수 없는 사랑을 느꼈어요. 총재님한테..

그래서 나는 총재님을 인간적인 면에서는 존경하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거 뭐 되지 못한 소위 목사라고 하는 자들은 “정명석이는 이단이다”…
같은 교인들이 더 지랄을 해~
자기들은 더 남에게 나쁜 짓하고 이런 놈들이 더 이렇게 핍박해서 너무 속이 상하고..

그때는 나도 정총재가 얘기하는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이 양반이 인간들이 싫어하고 해도 자기가 무슨 영광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고자기는 뭔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구나…
그런 것을 느꼈어요.
나는 그래서 그런 이야기하면서도
총재님에게 좋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총재님은 다른 사람들은 총재님을 안 좋게 이야기를 해도
그런 사람들도 다 포용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그것이 참 대단한 거구나 그것을 느꼈어요.

뭐 고향에서 목사들이 수도 없이 나왔어도
제대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요.
내 솔직히 이야기 해서..

다 문제가 있고 그런데
진짜 사랑으로 감싸고 사랑으로 해주는 사람은 없어요.
나는 목사를 많이 알아요.

목사들도 다 썩었어.
믿을 놈이 없어요. 믿을 놈이
그런데 정총재 이 양반은
남들이 무슨 이단이고 뭐고 그래도
이 사람은 자기에게 침 뱉고 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래서 이 양반을 존경하고..
자기를 비방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 사람이..
목사라고 이중 인격 쓰고 이지랄인데..

정총재는 자기를 이단이라고 하고
이런 사람을 사랑하라는 거여.
총재님의 깊이 있는 것을 내가 깨닫고 내가 이렇게 하는거지..

나도 나이도 먹고 뭔가 깊이 있는 뜻을 이제나마 좀 알 것 같고..
지금은 진짜 한번 보고 싶어요.. 보고 싶고..

총재님이 어떻게 그렇게 인내하고 그랬는지 대단하고..
그것을 지금 생각하니까 기도해서 그런 것을 하나님과 대화로 해결하고 한 것 같어..
우리는 그 뜻을 몰랐던거여.
총재님의 그런 마음을 지금와서야 좀 느끼는거지…
그때는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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